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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엽감는새1, 무라카미 하루키




작년 언젠가, 이웃님께서 올려주신 태엽 감는 새의 후기를 보고나서 이 책을 꼭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장장 3권이나 되는 장편소설이기에 우선 1권부터 봐야겠다 싶어서 1권을 가지고 벨기에로 왔는데

읽고나니 2권이 보고 싶고 궁금한데, 볼 수가 없다 젠장..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을 뭔가 특별한 느낌은 없는데, 중간 중간 가슴 깊이 스며드는 무언가가 있다.

공허. 그래 공허한 느낌이 생각난다. 내가 고등학생때 가장 좋아하는 단어였다. 공허함. 공허한 마음.

얼마 있지 않은 싸이월드 사진첩 중 하나의 이름을 'emptiness'로 해놓았을만큼.

그의 글을 읽다보면 인상이 찌푸려지다가도 알 수 없는 공허함에 사로잡히는 기분이다.


어제 1권을 모두 읽고 나서 줄지어 놓았더 글을 나열하며 정리하는데,

뜬금없이 등잔인물 가노 구레타와 마미야 중위의 대사에서 잠깐 멈칫했다.

나는 내가 아닌 사람들. 그리고 혼다의 대사 '나는 그, 그는 내가 되고, 봄날 밤.' 나를 버릴 때 나는 존재한다.


어느 글 중 '가장 먼저 버려야 할 것은 나를 향한 집착'이라는 문장을 보고나서 한참을 되새겼었는데

혼다의 말도 이 문장과 다를것이 없으니. 나는 이 문장들에게서 혼돈에 빠져있으니.

어떻게 버려야 할지 모르겠다.













눈에 닿는 모든 것이 멋지고 선명한 탓에 내 육체가 왠지 막연하고

아득해져 붙잡을 수 없는 존재인 것처럼 느껴졌다. 


/


"생각이 너무 먼 곳까지 가버려 ㅔ대로 그다음을 더듬어가지 못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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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를 꺼내어 마셨다. 엉망진창인 하루였다. 엉망진창인 해에, 엉망진창인 달에, 엉망진창인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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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맥주를 마셨고, 구미코는 소리를 내지 않고 계속 울고 있었다.

나는 스무 번까지 벨 소리를 세었으나그리고선 포기하고 울리도록 내버려두었다.

언제까지나 그런 것을 세고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


한 인간이 다른 한 인간에 대하여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과연 가능한 일일까?

즉 누군가를 알기 위해 오랜 시간 동안 진지하게 노력을 거듭하면 상대의 본질에 얼마만큼 가까이 갈 수 있을까?

우리는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상대에 관하여 그에게 정말로 무엇이 중요한지를 알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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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와 이야기하고 있을 때 적어도 지루하지는 않았어. 지루하지 않다는 건 나쁘지 않지.

어자피 이 세상은 알 수 없는 것으로 가득하잖아. 그리고 누군가가 그 공백을 메워야 한다구.

누군가가 그걸 메워야 한다면 지루한 사람보다야 지루하지 않은 사람 쪽이 훨씬 좋지. 안그래? 이를테면 혼다 씨처럼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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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겨우 마음속으로부터 안심할 수 있었다. 

무의미하고 불필요한 노력만큼 인간을 소모시키는 것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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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 그는 그가 되고, 가을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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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쪽이 좋고 어느 쪽이 나쁘다고 하는 종류의 문제가 아니야.

흐름에 거스르지 말고 위로 올라가야 할 때는 위로 가고, 아래로 내려가야 할 때는 아래로 내려 가는거야.

위로 가야 할 때는 가장 높은 탑을 찾아내어 그 꼭대기에 오르면 되지.

아래로 내려가야 할 때는 가장 깊은 우물을 찾아내어 그 바닥으로 내려가면 돼.

흐름이 없을 때는 가만이 있으면 되고, 흐름에 역행하면 모든 것은 망가지는 법이지. 

모든 것이 망가지면 이 세상은 어둠이야. '나는 그, 그는 내가 되고, 봄날 밤.' 나를 버릴 때 나는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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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에 의자 위를 올리고 무릎을 꺾듯이 해서 그 위에 턱을 괴었다. 그리고 한동안 눈을 감고 있었다.

여전히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눈을 감자 나타난 암흑은 구름에 뒤덮인 하늘과 비슷했지만 그것보다는 회색이 좀 더 짙었다.

그리고 몇 분 간격으로 누군가가 와서 그것을 조금 다른 감촉의 회색으로 칠을 했다.

금빛이 섞인 회색, 거기에 초록빛을 더한 회색, 빨강이 두드러지는 회색으로.

그렇게 많은 회색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나는 감탄했다. 인간은 참 신기한 존재라고 나는 생각했다.

십 분쯤 그렇게 가만히 눈을 감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많은 종류의 회색을 보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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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호기심이라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금방 사라져버리지. 용기 쪽이 훨씬 먼 길을 가야 한다구.

호기심이라는 것은 신용할 수 없는, 비위를 잘 맞춰주는 친구와 똑같지. 부추길 대로 부추겨놓고 적당한 시점에서 싹 사라져버리는 거야.

그렇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혼자서 자신의 용기를 긁어보아 어떻게든 해나가야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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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무서우리만치 천박하고 단면적이며 오만한 철학이었다.

이 사회를 진정한 근간으로 지탱하고 있는 이름 없는 사람들에 대한 관점이 결여되어 있고,

인간의 내면성과 인생의 의의라는 것에 대한 성찰도 빠져 있었다. 상상력도, 회의라는 것도 결여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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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가치관이라는 것을 가지지 않았으니까 타인의 척도와 관점을 빌려오지 않으면 자신이 서 있는 위치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것이다.

그 두뇌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자신이 타인에 눈에 어떻게 비치는가'라는, 단지 그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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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나 자신의 존재와 타인의 존재를 전혀 다른 영역에 속하도록 구별해주는 능력이 있다.

즉 나는 무엇인가로 불쾌해지거나 초조해지거나 할 때 우선 나 개인과는 관계없는 어딘가의 다른 영역으로 이동시켜 버린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한다. 됐어, 나는 지금 불쾌하거나 초조하다. 하지만 그 원인은 이미 여기에는 없는 영역으로 들어가버렸다.

그러니까 그것에 대해서는 나중에 천천히 검증하여 처리하기로 하자고. 그렇게 해서 일시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동결시켜버리는 것이다.

나중에 그 동결을 풀어 천천히 검증을 해봐도 여전히 감정이 혼란해져 있을 때도 간혹 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오히여 예외에 가깝다. 적당한 시간이 지나면 대개의 것은 독기가 빠져 무해한 것이 되기 바련이다.

그래서 나는 조만간 그 일을 잊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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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미열처럼 늘 내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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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고통이라는 것이 없었다면, 그것은 트집 하나 잡을 것 없는 인생이며 청춘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거기에는 언제나 고통이 있었어요. 고통은 저의 그림자 같은 것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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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참으면 익숙해지고, 익숙해지면 아프지 않게 되니까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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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는 뚜렷한 엇갈림 같은 것이 있었어요. 그것은 저를 혼란에 빠뜨렸죠.

저라는 인간은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지금까지 저는 세상을 계속 증오해왔어요.

그 불공평과 불공정을 저는 계속 증오해왔던 거에요. 그러나 적어도 거기에서는, 저는 저고 세상은 세상이었어요.

그러나 이제는 세상은 세상이 아니었고, 저는 제가 아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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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요, 태엽 감는 새 님, 인생이란 게 원래 그런게 아닐까요? 모두 어딘가 어두운 곳에 갇혀서, 먹을 것이랑 마실 것을 빼앗기고,

점점 천천히 죽어가는 것이 아닐까여? 조금씩 조금씩." 나는 웃었다. "너는 네 나이치고는 가끔 굉장이 페시미스틱한 사고방식을 갖고 있구나."

"그 페시 어쩌고 하는게 무슨 뜻이에요?" "페시미스틱. 세상의 어두운 부분만을 꺼내서 본다는 뜻이지."

페시미스틱, 하고 그녀는 몇 번을 입속에서 되풀이했다. "태엽 감는 새 님." 하고 그녀는 내 얼굴을 가만히 노려보듯이 올려다보면서 말했다.

"나는 아직 열여섯 살이고, 세상일을 그다지 잘은 모르지만요, 하지만 이것만큼은 확신을 가지고 단언할 수 있어요.

만약 내가 페시미스틱 하다고 한다면, 페시미스틱하지 않은 세상 어른들은 모두 바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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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야만 헤어날 기회도 있고, 노모한··· 하고 나는 혼잣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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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욕실에 가서 이를 닦으면서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일을 그만두고 나서 석 달, 나는 거의 바깥세상에는 나가지 않았다.

근처 상점과 구립 수영장과 이 집 사이만을 왔다 갔다 하고 있을 뿐이었다. 

긴자의 와코 양품점 앞과 시나가와의 퍼시픽 호텔을 제외하면, 내가 집에서 가장 멀리 갔던 곳은 역 앞의 세탁소였다.

나는 그동안 거의 누구도 만나지 않았다. 석 달 동안에 내가 '만났다'고 할 수 있는 상대는

아내를 빼면 가노 마루타와 구레타 자매, 가사하라 메이뿐이었다. 그것은 정말로 좁은 세계였다.

그리고 거의 걸음을 멈춘 듯한 세계였다. 그러나 내가 포함되어 있는 세계가 그렇게 좁아지면 좁아질수록,

정지되면 정지될수록 그 세계는 기묘한 사건과 기묘한 사람들로 넘쳐흐르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언젠가 내가 걸음을 멈추기를 그들이 그늘에 숨어 가만히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태엽 감는 새가 정원에 와서 그 태엽을 감을 때마다 세상은 점점 더 혼미함을 더해가고 있는 것이다.

나는 입을 헹구고, 그러고 나서 다시 잠시 동안 내 얼굴을 보았다. 이미지를 가질 수 없는 것이다, 라고 나는 내 자신을 향해 말했다.

나는 서른 살에 멈춰서서, 그대로 이미지를 가질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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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다 씨. 모퉁이를 하나 돌면요, 그런 장소가 분명 있어요. 거기에는 당신이 본 적도 없는 세계가 펼쳐져 있어요.

당신에게는 사각지대가 있다고 말했죠? 당신은 그걸 아직 모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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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과 함께 의식은 점점 부풀어 확산되어 가는데, 그것을 자신의 육체에 붙잡아 놓을 수 없게 되는 것 말이요.

그것이 몽골 평원 한가운데에서 내가 느꼈던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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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빛은 나에게 있어서 그 정도로 신비한 것이었소. 잘 설명 할 수는 없지만,

있는 그대로 솔직히 말해, 그 후 나는 무엇을 봐도, 무엇을 겪어도 마음속으로는 아무것도 느끼지 않게 되어버렸다오."


/


"내게 그런 건 어차피 아무래도 좋았던 것이오. 내 안에 있는 무엇인가가 이미 죽어 있었던 것이오.

그리고 아마 나는, 그때 느꼈듯이, 그 빛 속에서 숨이 끊어져 죽어버렸어야 했던 것이오. 그때가 내가 죽을 때였던 것이오."


/


나는 그 상자를 열어보았다. 그리고 그 안에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것을 발견했다. 그건 정말 텅 빈 상자였다.

혼다 씨가 내게 남겨준 것은, 단지 빈 상자였던 것이다.






 ̄ ̄ ̄ ̄ ̄ ̄



나는 나를 버릴때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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